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번째 주 (문단 편집) === [[쿠바]] === [[미국]]은 독립 이후 국가적 확장이 시작되면서 일찌감치 쿠바 섬을 노리고 있었다.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과 경제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. 때문에 미국은 [[1859년]]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[[스페인]]에 1억 5천만 [[미국 달러|달러]]에 [[쿠바 도독령|쿠바]]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. 이 가격은 [[루이지애나 매입]]이나 [[미국-멕시코 전쟁]] 후의 헐값 매각(1500만 달러)의 10배나 되는 가격이었다. 720만 달러의 [[알래스카 조약|알래스카]]의 20배 가격이고. 미국은 일찌감치 스페인과 협상을 통해 [[1819년]]에 [[플로리다]]를 양도받은 적이 있어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으나 스페인의 반응은 냉담했다. 쿠바의 경우 그 다음 세기 [[프랑스 식민제국|프랑스]]의 [[프랑스령 알제리|알제리]]나 [[영국]]의 [[북아일랜드]]처럼 당시 [[스페인인]]들 머리 속에서는 단순한 해외 [[식민지]]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꾸준히 투자를 하고, 이민을 보내고, 현지 사회를 양성한 자국의 정당한 고유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.[* 그리고 프랑스의 알제리 영유권이야 자신들 의식 속에서야 우리가 투자도 오래했고 개발도 했으니 [[본토]]나 마찬가지라 주장하지, 사실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은 [[19세기]] 초중반의 일로 100년 넘은 오랜 식민 통치를 겪었지만 그 사이에 프랑스의 정복 이전 [[마그레브]] [[무슬림]] 고유의 [[문화]]나 [[정체성]]을 잃은 것도 아니다. 반면 쿠바의 경우 정직하게 스페인 정복 이전 [[타이노인|토착민]]들은 전염병과 학살로 전멸당했고, 그 공백을 메꾼 스페인 주도 개발은 1500년대 초반부터 이루어진 거의 400년 짜리 핵심 영토였다. 또한 [[에르난 코르테스]]의 [[아즈텍 제국|아즈텍]] 정복 이전까지 쿠바는 [[쿠바 총독령|스페인령 아메리카 전체의 중심지]]였고, [[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 전쟁|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 상실]] 이후의 [[아바나]]는 다시 스페인령 아메리카 식민지의 [[수도(도시)|수도]] 역할을 했다.] 그러나 스페인의 거부와는 별개로 쿠바 섬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. 많은 스페인 식민지들처럼 쿠바도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을 원하였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독립 게릴라들은 미국과 자발적인 합방을 원하였다.[* 하지만 쿠바의 [[혁명가]]인 [[호세 마르티]]는 쿠바의 독립을 요구하였다.] [[미국-스페인 전쟁]]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스페인은 쿠바, [[푸에르토리코]], [[필리핀 도독령|필리핀]]에 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. 이후 [[1902년]] 미국은 쿠바에게 [[제국주의]]적 야심이 없다(?)는 것을 과시할 요량으로 쿠바를 자국에 편입시키는 대신 쿠바를 [[쿠바 제1공화국|주권 국가]]로 독립시켰다. [[마크 트웨인]] 같은 이들은 개소리한다고 비웃거나 비난했는데 '''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던 미국이 정작 [[미국령 필리핀|필리핀은 식민지로 만든 전적이 있었다.]]''' 일부 미국 사가들은 쿠바를 푸에르토리코처럼 미국에 귀속시켰어야 했다며 '''[[쿠바 혁명|쿠바 독립을]] [[쿠바 미사일 위기|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 실수 중의 하나]]'''라고 평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